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호 전차 티거 (문단 편집) === 기동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ybach_HL_230_Technikmuseum_Sinsheim.jpg|width=100%]]}}} || || '''V12 마이바흐 HL230 P45 엔진''' || 티거에 채용된 마이바흐 HL210 P45엔진은 V12에 최대출력 650PS으로 당시에는 세계 최대 출력의 가솔린 엔진[* 항공기용 엔진 제외.]이었지만 전투중량 57톤의 거구를 움직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중기부터 [[마이바흐 HL230]] P45엔진으로 교체하며 최대 출력이 700PS으로 증가한다. 최초 투입되었던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기 쉽다는 결함이 발견되었고, 그에 따라 티거를 대상으로 최대속력 주행 금지, 타 차량 견인 금지 조치를 취했다. 또한 최초로 온도 센서를 이용해 전압으로 접점을 작동 시켜 소화분말을 분사하게 하는 자동소화장치를 장착하였다. 유압식 조향장치, 전진8단 후진4단의 반자동변속기도 최초로 탑재되었다. 이 변속기는 운전이 쉽고 선회반경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선회반경은 각각 티거 3.44m / 셔먼 18.6m / T-34 7.7m / 4호 전차 5.92m였다.] 제자리 선회도 가능했지만, 티거의 궤도 장력을 유지하는 후방 [[유동륜]]이 바닥을 지탱하는 보기륜보다도 작고 보기륜과의 높이 차이도 크지 않아 급기동 시에는 빠지기 쉬웠다고 한다.[* 4호 전차까지만 해도 궤도의 윗부분을 따로 지탱해주는 리턴롤러가 있었지만 리턴롤러 없이 교차식 서스펜션을 쓴 판터와 티거는 궤도 이탈이 매우 잦았다. 다른 예로는 T-34나 74식 전차. 이 문제점 때문에 현대 전차들은 대부분 리턴롤러를 장착한다.] 경사면 주행 시에도 고장이 심해 운전자가 세심하고 부드럽게 조작해야 했다.[* 이 때문에 산악지형이 많은 이탈리아에서는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른 적도 없이 기동 중 대부분의 차량을 잃었다. 고딕 라인 방어전 동안 64대를 손실했지만 이들 중 적이 격파한 차량은 5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얼마나 문제가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때 티거와 달리 맹활약을 펼친 차량은 [[나스호른]].] 티거 전차는 근본적으로 1935년에 시작된 [[전선 돌파 차량 1 / 2|전선돌파차량]] 설계의 확대 및 계승형으로, 이 설계의 화력과 방어력을 개선하면서 [[VK 30.01 / 02#s-2|30톤 급 설계]]에서 [[VK 36.01|36톤급 설계]]로, 그 다음엔 45톤, 최종적으로는 완비 중량 57톤으로 계속 덩치가 커졌다. 그러나 이를 문제 없이 움직일 구동계는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독소전쟁|동부전선]]의 수요가 매우 급했던 까닭에 신형 중전차를 서둘러 배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40톤밖에 못 버틸 구동계[* 실제로 구동계통에는 병기국의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집어넣은 신형 광폭 궤도를 제외하고는 티거 전용 신규설계가 적용된 것이 없었고, VK 36.01의 구동계 부품을 그대로 유용한 부품이 대다수였다. 심지어는 더 이전의 설계안인 VK 30.01의 부품도 일부 섞여있었다. 그리고 그 궤도마저도 수송용 궤도는 헨셸의 기존 30톤대 전차의 일반 궤도였다.]를 무려 57톤짜리 전차에 얹고 시운전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제식도입하여 곧장 전장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 Thomas Jentz; Hilary Doyle, Tiger I Heavy Tank, Osprey Pub., 1993, p.18] 계속 생산하며 개량도 이루어졌지만 본디 30톤이었던 것을 57톤으로 비대하게 키웠던 데에서 발생한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군수지원 측면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졌다. 독일의 군수지원체계가 60톤에 육박하는 무게를 가진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절차가 전혀 없어 단순 주행 중에 고장이 빈발하는 이 전차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고, 전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용 구난전차가 제때 오지 않으면 차량을 버리고 탈출해야만 했다. 물론 전후 전차인 M48, M60, M1 전차도 엔진이 잔고장이 많았지만[* 특히 M1은 에어필터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고 이전에 비해 급증한 연료 소비로 인한 보급부담과 기타 문제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사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오류를 겪을 수밖에 없다. M1전차의 경우 MMBF(mean miles between failure)가 목표치인 272는커녕 104.3 밖에 안 되었고 포트 녹스에서 시험할 때는 93.97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육군이 요구한 최소요구치는 320, 권장은 350 MMBF인데 한참 모자랐다. 당시 M60 전차는 같은 조건에서 생산 된 지 12년이 되었을 때는 242, M1테스트 당시에는 407정도였다. 에어 필터와 연료배관의 설계가 불완전했고, 연료배관에 문제가 있어 연료가 새는 데다 노즐은 균열이 쉽게 생겼고 변속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에어 필터 설계 문제로 터빈 블레이드가 손상되는 경우도 빈발했다. 궤도는 심심하면 이탈했다. 군수지원 체계도 미비해서 한 때는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제대로 된 교범조차 없어 상황에 즉흥적으로 대응했다.] 해당 중량의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절차를 갖추어 별 무리 없이 운용할 수 있었다. 티거는 중량 문제로 다리를 건너기가 어려워 도하를 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차체 전체에 방수 처리를 했다. 슈노켈을 장착하면 4m 깊이까지 도하가 가능했다. 이 방수처리와 수압 테스트 과정에서 티거 개발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고 알려졌으며 잠수능력을 포기한 중기형부터 생산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어차피 야지에서 도하를 하려면 준비하는 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해치, 잠망경, 주포 및 기관총좌를 전부 고무로 밀폐해야 하는데 티거 여러 대에 이 짓을 하고 있느니 부교를 놓는 게 빠르고, 도하 중 차량에 침수가 발생하면 전차와 승무원이 훅 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K-21]] 참고.] 위험했기에[* 출고 시에는 방수 처리가 온전하겠지만 방수처리된 부분에 피탄이 발생한 이후에는 어찌될지 모른다.] 잘 쓰이지 않았다. 그나마 방수처리를 포기한 차량도 수심 1.6m 정도는 그럭저럭 도하가 가능했다고 한다. 티거의 중량은 이전까지 다른 기갑차량들은 별 문제 없었던 부분에서까지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다. 지반 자체가 티거의 중량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었다. 지반이 좋지 않은 동부전선은 물론이고 둑길이나 제방, 프랑스의 주거지역 등 지하실이 많은 지역에서는 지반 붕괴로 티거가 손실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티거 승무원들은 기동 중 이러한 위험을 항상 주의해야 했다.[* 오토 카리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502 중전차대대의 어떤 [[상사(계급)|상사]]가 전차장으로 있던 티거는 특히 운이 없어서 [[고문관|움직이기는 하는데 전진을 못하고 맨땅에서 땅만 파거나, 여러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티거를 전복시키거나 고장내는 등 비전투손실이 부지기수였고]], [[우리의 주적은 간부|해당 전차장은 전우들에게 소비에트 연방영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1I-635-3965-28%2C_Panzerfabrik_in_Deutschland.jpg|width=100%]]}}} || || '''토션 바 구조와 3중 로드휠. 티거의 구동계는 특히 충격에 강해서 야지에서 고속주행시에도 차체는 안정을 유지했으며 주포를 발사해도 차체는 미동도 안 했다.''' || 독일은 전차용 [[토션바 서스펜션]]을 [[3호 전차]]에서 완성하고 티거에 채용된 토션바 서스펜션 구조를 채용하였으며, 이때 완성된 토션바는 오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선진적 구조였으며 특히 충격 흡수가 뛰어났다. 또한 무거운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로드휠은 3개를 교차하는 식으로 배치하고 광폭의 궤도를 장착하였다. 이 때문에 티거는 우수한 접지압과 함께 하부 방어력이 증대 효과를 보았다.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4호 전차]](28톤)보다 오히려 더 기동성이 좋은 면도 많았고 처음 [[T-34 전차]]와 동계전투에서 교전한 전차병들은 심지어 T-34보다도 기동성이 좋다고 느꼈을 정도다. 하지만 하중 분산이라는 장점에 비해서 단점이 너무 치명적인데. 교차식 로드휠은 하중 분산에는 좋은 설계지만 바퀴가 너무 많아서 이물질이 잘 끼이는 것이 문제이다. 흙은 당연히 끼이고 [[진흙]]이나 [[암석|돌]], [[얼음]]이 끼면 상당할 정도의 기동성에 제약을 받아서. 이 상태에서 전투기동을 하다 재수가 없으면 [[트랜스미션]]이 버티지 못하고 고장이 난다. 그리고 전차병들의 책임도 큰데 포탑을 돌리는 대신에 [[돌격포]]나 [[구축전차]]처럼 차체를 돌려 포를 맞추어서 변속기 수명을 줄였다. 포탑 회전 속도가 느렸으면 모를까 360° 회전 속도는 당대 최고였던 19초였는데도 말이다.[* 이건 전차병들의 책임이 아니라 [[티타임]]이라 불리는 2차대전 기갑전의 주요 전술중 하나였을 뿐이다. 경사 장갑 효과를 얻고 측면 노출을 최소화 하기 위해 독일군이 교범에서 강조할 정도로 중요시 했었다.] 그러면 정비를 받아야 하는데, 정비 시 고장난 한 개 이상의 로드휠 때문에 나머지 수십개의 로드휠들이 모두 정상이라도 몽땅 떼야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정비 비용 + 난이도 + 시간이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버렸다. 또 전면 변속기를 수리하려면 포탑에다가 차체 상부를 모두 들어올려야 해서 그야말로 T-34, 셔먼 잡는 것에 비례해 유지 및 정비성이 아주 안 좋았다. 후대 전차들도 독일 전차의 설계개념은 받아들여도 이런 바퀴 겹치는 방식인 오버랩 설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따라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정비 방식이다. 결국 유지보수 문제로 후기형에선 로드휠의 재질을 강철로 바꾸고 최 외측 로드휠은 제거해버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fprado.com/Tigers_on_rail_car.jpg|width=100%]]}}} || || '''열차에 적재된 티거, 열차 밖으로 나온 티거의 궤도를 확인할 수 있다. 티거는 열차칸에 연속 배차할 수 없고, 수송용 궤도로 교체하라고 규정했지만 이를 지켜 수송하는 사진은 별로 없다.''' || 티거의 모든 전략기동은 열차수송을 통해 이루어졌다. 비전투지역에서 자력주행을 하게 되더라도 장비에 무리가 갈 가능성을 감안해 포장도로에서는 시속 20~25km, 비포장도로에서는 그 이하의 속도로 주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처: 오토 카리우스, <진흙 속의 호랑이>.] 또 궤도의 폭이 넓다보니 독일의 표준 열차 차폭을 넘었고, 때문에 마주오는 열차나 철로 위의 다른 구조물과 수송 중인 전차가 서로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힘든 57톤 전차의 열차 적재/하역 작업에 열차 수송용 궤도를 별도로 두고 이송 시마다 궤도를 교체하는 일까지 해야만 했다. 중전차대대 편성 훈련 때 이러한 궤도 교체는 30분 이내로 완수하도록 훈련을 실시했다. 여기에 더해 열차 수송용 궤도로 교체하는 작업은 적재 때 한 번, 하역 때 한 번 이렇게 무조건 두 번 해야만 했다. 곧 실제로 소요되는 시간은 두 배가 되므로 번거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유럽과 달리 러시아 평원의 선로는 대부분 허허벌판에 철로만 덩그러니 깔려 있어 궤도 교체 없이도 열차기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티거의 최고속도는 이론상 45km/h로 T-34 전차에 밀리지 않는다. 나아가 야지에서도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타국의 전차는 대부분 야지에서 20km/h 정도가 한계였다. 다만 전차가 무거울수록 변속기와 및 종감속기의 부담도 커지는 편이었고, 때문에 티거는 이론상 T-34에 비해 야지 기동 시 신뢰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부품의 품질과 설계상 배려 덕분에 티거가 T-34보다 야지 기동 시 신뢰성이 나은 편이었다. 여기에 전차전은 자동차 경주가 아닌 관계로 단순히 최고속도나 중량 대비 출력이 우수하다고 성능이 더 뛰어난 것이 아니다. 궤도가 넓어 회전반경이 작았고, 당시 자동차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유압식 파워핸들을 갖추는 등[* 티거만 그랬던 건 아니고 영국군의 [[처칠 전차]]도 파워핸들이 달려 나왔다.] 조향장치의 질이 훨씬 뛰어났고, 전/후진 기어도 더 다양했다. T-34는 조향능력이 대단히 뒤떨어져 독일군 사이에선 '오리 궁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점에 비하면 티거는 기동성이 매우 뛰어난 전차였던 것이다. 이처럼 티거는 전술기동력은 좋은 반면 무거운 무게와 이로 인해 떨어지는 신뢰성, 낮은 연비 문제 때문에 자력으로는 전략기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거기에 수세에 몰리면서 전략수송을 담당하던 열차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서 티거의 작전 능력과 전장 장악력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는 독일이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티거의 전투력도 급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르망디 상륙 당시 공습으로 파괴된 철도망 때문에 티거들은 전부 자력주행으로 전장에 도달해야만 했고, 태생적으로 이런 자력주행이 어려운 전차였다는 문제 때문에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손실 차량이 수두룩했다. 노르망디 전역에서 상실한 티거 중 공습으로 격파된 차량의 수는 약 10% 수준에 그쳤지만[* 총 126대 투입 105대 손실, 38대 전투손실, 13대 항공기에 의한 격파. 출처:Tigers in Combat, Vol. 1: Wolfgang Schneider] 공습을 피하기 위해 연료를 낭비하거나, 항공기를 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기동로가 제약되는 문제, 매복 지점 상실 등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간접 피해를 입게 되었다. 동부전선에서도 자력 기동성이 크게 뒤떨어지는 티거와 기타 독일 전차들은 T-34처럼 장거리를 자력으로 주파하여 포위망을 형성하거나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는 등 직접 전략 기동을 실시하는 소련 전차들을 막을 수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티거는 당장 눈앞에 닥친 전투는 이겨도 더 광범위한 전장에서 펼쳐지는 소련군의 전략기동을 저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위치를 내주고 후퇴하기를 무수히 반복해야 했다. 사실 위와 같은 전략기동에 대한 평가는 티거가 억울한 면이 있는데, 2차 대전기의 중전차들은 전부 전술적 승리 및 적 방어 진영 돌파가 목적이었지 전략기동은 불가능했다. 전략기동 자체가 중형전차의 몫이지 무겁고 정비소요가 큰 중전차가 할 일이 아니다. 다만 패배가 보이기 시작한 독일은[* 사실상 연합국과 소련은 1943년 중후기만 가도 독일이 승리할 가망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 독일또한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구분해서 티거와 중형전차를 투입할 상황이 아니였고, 중전차대대는 막대한 실적을 보였기에 지원을 몰아줘 판터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가동률로 당장 투입이 가능하여 그 무거운 몸뚱이를 소방수로써 투입되었기에 부각되는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dyUgUl.jpg|width=100%]]}}} || || '''항공기로부터 피격당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찰기로부터 발각되지 않도록 기동흔적을 지우고 매복한 모습이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